실존적 딜레마 극복 4부

처절하게 공허하고
치열하게 절망한다

처절한 절망이 이닌 치열한 절망인 이유는 내가 목적을 가지고 이 문제에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는 나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분리한 뒤에 남은 가느다란 막대기 하나이다.

친구, 혈연, 사회적 관계, 그리고 내 기억, 감정… 존재가 입은 옷이며 존재가 벗을 수 있는 옷이다.

그 옷을 모두 벗고 남은 마지막 하나. 내가 잃을 수 있는 모든 것이자 내가 세상에 가지고 온 나의 것이 자명한 유일한 것.

사회적인 나를 구속하는 모든 관행, 습관, 법, 불문율, 도덕… 은 내 실존위에 올라탄 먼지이다.

자유롭다. 자유롭기에 창의적이며, 순수하다. 자유롭기에 외롭고, 공허하다.

불완전한 자유의 과실을 맛보고 즐거웠고 희망찼다. 완전한 자유를 마주하고 방황한다.

존재할 구실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절망했다.

니체,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이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한다.

어깨 너머로 그 형태를 본 적 있다.

내게 필요한, 내게 맞는 열쇠가 아니다. 나에겐 나만의 고민, 나만의 과정, 나만의 결과가 있어야 한다.

이론서를 읽지 않고 실존을 논한다고 친구에게 타박을 들었다.

친구야. 읽고 들은 게 너의 것이 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난 나만의 처절한 고민을 통해 더 나은 결론을 만들어 낼 거란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많은 고민을 거치어 다음과 같은 실존 가치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우리 실존의 가치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절대적 가치를 불완전하게 담은 행위의 결과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한 과정의 진실되고 처절한 울부짖음 속에 실존을 느끼는 자신이 부여한다.

우리의 모든 행위 결과는 우리의 필멸성 앞에 부스러져 빛이 바랜다.

지금, 여기 내가 느끼는 “자신에 대한 감지”는 실존하는 주체가 감지할 수 있는 최고의 사실이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다.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이전에 나의 존재 시간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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