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내가 좋아하는 책이기 전에 양질의 토론 주제를 뽑을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2. 토론 주제의 원자성

3. MECE

4. 모두의 동의(+ 모두의 무지)

5. 마치며

1. 내가 좋아하는 책이기 전에 양질의 토론 주제를 뽑을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시험 기간이 시작되기 전 커선보에 대한 공지가 있었습니다. 함께 읽어보고 싶었던 몇 가지 책 중에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결론은 마음속에 이미 정해져 있었고 다소 자기 기만적인 요식 행위로써의 고민을 거친 뒤 예정된 결론을 지었습니다. 제가 정말 사랑하던 책이기도 했지만, 추천할 만한 타당한 핑계도 있었습니다. 정신적인 방황의 씨앗을 심고, 건전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도왔던 책이기에 사암인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토론 주제를 어떻게 뽑지?’ 라는 작은 우려가 있었지만, 타당한 이유와 내가 사랑하니까 라는 이유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안일한 결론을 내린 채 진행했습니다.

정독을 하고 나니 초라한 몇 가지 주제들이 추려졌습니다. 내가 좋은 책을 두고 토론주제를 뽑는 요령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싶어 사암 자료실에 발제 관련 자료를 읽어 보았습니다. 내친김에 사암 헌법도 읽어보았습니다.

토론 주제를 찾기 어려운 책이 맞았고, 책 선정부터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사암 헌법 제 2조

본회는 대학생의 토론을 통한 아카데미즘 추구와 우의의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예.

바꿔야겠군요.

2. 토론 주제의 원자성

이 부분은 그냥 새내기의 용기로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의견을 두고 많은 반박과 선배님들의 조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을 개인적인 기록으로 남기곤 하는데 토론 주제에 대한 초기 입장을 준비하며 들었던 느낌을 off the record의 형식으로 메모를 남깁니다. (지금 보니 다소 역설적인 행위인 것 같습니다)

이번 커선보를 준비하며 추렸던 주제들이 모두 off the record에 남겨질 아쉬움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내용을 고백합니다.

먼저 용어를 두고,

“원자성(atomicity)”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위성”이라는 단어를 두고 퇴고했는데 결국 “원자성”이 저에게 더 익숙하여 선정하였습니다. 더 좋은 단어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사용한 “원자성” 이란 단어의 의미는 ‘더 이상 작은 문제로 쪼개지지 않는’ 입니다.

제가 마주쳤던 사례를 소개합니다.

사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우리를 인도할 수 없다면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손으로 넘어온 것이며 우리의 삶도 어떤 외재적인 대상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인하고 채워가야 할 어떤 것이다." 에 동의하는가?

A -> B and C 식의 명제 입니다. 그냥 보기에도 원자성을 가질 수 없는 명제입니다.

다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우리를 인도할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은 스스로 시인하고 채워가야 할 어떤 것이다.'

A -> B식의 명제입니다. A의 참 거짓에 대해 구성원들의 통일적인 합의가 전제되어야 A -> B의 참 거짓에 대해 논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직 원자성이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조금 변형해보겠습니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우리의 실존에 대한 이유를 제공할 수 있는가

A 라는 명제에 대해 참 거짓을 판별하는 질문입니다.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함정이 있습니다.

A 속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에 대한 전제가 숨어있습니다.

전제가 자명한가요?

차선책으로 구성원 전체가 동의하나요?

다시 쪼갭니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하는가?

책의 내용에서 한참 멀어졌습니다.

원자성의 목적

원자성을 충족해야 하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해보자면,

먼저 주제의 복잡성을 줄이기 위함입니다.
주제가 복합 명제(A -> B)로 구성된다면
A에 동의하지 않거나 (!B -> !A 제외)
B에 동의하지 않거나 (!B -> !A 제외)
A, B에 동의하지만, A -> B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모두가 false 측에 몰리게 되고, 토론은 산으로 가겠죠.

그리고 발제문으로 나뉘게 되는 두 주장이 서로 배타적이며(교집합이 없고), 그 둘이 놓치는 제3의 주장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합집합이 전체집합)

3. MECE

마케팅 용어인데 전공 수업 듣다가 이거 사암에 말해야겠다 싶어서 보관하고 있었던 단어입니다.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상호 배제와 전체 포괄)의 머리글자를 따온 말인데요,

겹치지 않으면서 빠짐없이 나눈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자성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과생들을 위해서 표현을 추가하자면, 두 문장이 있고, 각각이 시사하는 바가 A, B 라고 할 때
A ⋂ B = U and A ∪ B = ∅ 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off the record 에 썼던 것을 하나 가져와 볼게요.

예시

"개인이 남을 돕는 행위의 우선적인 목적은 공동체의 안정적인 지속을 위함이다 vs 개인의 감정(ex. 연민)을 충족하기 위함이다."

위 예시는 ME를 충족하지 않습니다. (이하 배타성)

우리의 행동 목적은 안정적인 지속을 위함 또는 개인의 감정을 충족하기 위함을 배타적으로 담지 않습니다.
보통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둘 우리의 행동 목적에 포함되지 않던가요?

또한 CE를 충족하지 않습니다. (이하 전체성)

우리의 행동 목적이 공동체의 안정적인 지속을 위함 또는 개인의 감정을 충족하기 위함 둘 중 하나에 반드시 포함되지 않습니다.
생각을 거칠 수 없는 찰나에 결정된 본능에 가까운 즉발적인 행동들도 있겠구요, 충동적인 행동들도 있겠지요.

그런데

MECE를 충족하는 것은 의미하는 범위가 명확한 단어 수준이 아니라면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문장들이 서로 MECE를 충족하기 위해선 극도로 단순한 의미를 갖는 문장을 제외하곤 매우 정교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4. 모두의 동의(+ 모두의 무지)

우리들이 불완전한 토론 주제를 가지고도 즐겁고 유익한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의 동의나 모두의 무지로 논의에 포함되는 범위를 제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한된 범위 내에선 엄밀한 의미의 MECE를 충족하지 않더라도
우리들의 논의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 작은 공간만 전체성을 위반하게 되고,
배타성을 준수하지 않아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거나 원활한 토론을 위해 무시합니다.

모두의 동의는 무엇으로 구성될까요?

바로 상식(+ 상대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사회자 모임에서 주제가 논의된 맥락입니다.

5. 마치며

이번 커선보를 작성하며 토론 주제의 원자성, A vs B 구도의 배타성, 불필요한 가치판단 요소의 제거, MECE 등 여러 토론 주제의 조건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도 커선보 핑계 삼아 다시 읽어볼 수 있었지요.

114기 동기 여러분도 이번 첫 커선보 작성 시간이 유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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