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 딜레마 극복을 위한 노력 -1

실존적 딜레마 극복

lethal fact

중학교 2학년 모태신앙을 등지며 불가지론자를 거쳐 무신론자가 되었다.

끔찍한 공허와 일말의 구속조차 없는 자유가 신앙의 자리에 들어섰다.

나의 존재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의 탄생과 함께 내게 주어진 잔이며 다른 누구와도 그 소유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존재를 향유하는 유한한 시간이 지나고 내게 지각과 사고 즉, 존재의 종말이 찾아온다는 필멸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는 데 4년이 걸렸다. 그러나 가끔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볼 때, 익숙한 필멸이 낯설어진다.

떼를 쓰거나 나를 속여선 안된다. 다시 이전처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익숙하게 품어야 한다.

overcome

이문열의 <그 해 겨울>에 나온 구절이 도움이 된다.

“신도 구원하기를 단념하고 떠나버린 우리를 그 어떤 것이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의 의지를 버렸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내 몫의 잔에 든 내용물에 대한 불만은 없다.
내가 받은 잔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첫 모금을 제외하곤 다채로우며 생기와 활력으로 넘실거린다.

그러나 나는 이 생기와 활력의 축제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젊고 열정적이고, 희망찬 내 시야는 내게 주어진 역량, 내가 개발한 역량을 발휘할 밝고 정신없는 미래를 향해 있지만,

30대의 나는 당장의 앞 일만을 볼 수밖에 없을 테다.

40대가 된 나는 하나둘씩 드러나는 내 황혼의 전조에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붙잡고 확연히 수그러든 불꽃에 부채질할 것이다.

죽음의 전조가 하나 둘 도착할 무렵 나는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 찾아왔을 때 내 잔이 마침내 비었음을 인정하겠다.

정리

글을 쓰며 다시 존재의 종말을 익숙하게 여기게 되었다.

지금 마주한 순간 속에 즐거움이 있고, 앞으로 나를 찾아올 순간 속엔 기대가 있다. 지금의 상태이다.

굳이 서둘러 마중 나갈 이유도, 애써 도망칠 여유도 없다. 갑작스러운 방문을 굳이 정성 들여 예비할 필요도 없다.

전조가 다가올 때 축제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인정하며 머릿속 한켠을 비워 준비를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

그래도 예외

성냥팔이 소녀의 팔리지 못한 성냥들이 소녀의 품에서 잠깐의 온기를 위해 소비되듯 오래도록 팔리지 못한 젊음을 스스로 소비할 때

나이가 들어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억과 증거가 생소해질 때

공판을 열어 마중나가기를 결정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