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배경

대략 1년 6개월 전, 갓 전역하고 컴퓨터공학이란 학문에 처음 입문했던 시절, 공부가 너무 즐거웠었다(지금도 즐겁긴하다). 그리고 당시 지금의 글을 쓰는 어떤 아이디어 하나가 내 머릿속에 움을 텄다. 아이디어를 토막글로 일기장에 남겨 놓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행복은 어쩌면

요즘 행복은 꿈을 이룬 미래가 아닌
꿈을 향하는 과정인 현재에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미래에 내 꿈을 이뤘다고 한들 꿈을 이루고 난 삶이
지금 이 보람찬 시간에 비할 수 있을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게 보람차고
기대할 미래가 있다는게 너무 행복하다.

지금보다 행복한 날이 앞으로 있을까?

당시를 돌아보면 그 때 까지 인생에 있어 어느 때 보다 충만함으로 가득찬 나날들을 살고 있었다. 당시 아이디어는 어떤 형태를 갖추기 보단 당시 조증에 가까운 충만함의 근원에 대한 지각을 표현한 수준이었으나 1년 6개월간의 시간동안 몇 번의 크고 작은 굴곡을 거치며 몇 가지를 더해보고자 한다.

추가

2022.02.08
글이 너무 두서가 없어서 전체적으로 뜯어고치고 싶었지만, 당장 해야 할게 너무 많아 배경 에피소드를 추가하는 것으로 미약하게나마 보강하겠다.

42서울 집중교육인 La Piscine 때의 일이다. 라피신의 대단원인 마지막주에 본과정 선발을 판가름할 BSQ라는 2인 1조 최종 과제를 부여받고 같이 교육받는 친구와 함께 몇일 밤낮으로 어떤 알고리즘을 어떻게 넣어서 공간복잡도와 시간복잡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지 토론하고 구현하고 테스팅하기를 반복했다. 조금만 구글링을 하면 이미 앞서 La Piscine을 수행한 이전 기수들의 답안이 나왔지만, 양성교육을 받을 땐 내 머릿속에서 나오지 않은 코드는 내 프로그램에 넣지 않겠다는 기조를 유지하며 정말 누가봐도 획기적인 메모리 사용을 보여주며 동시에 속도도 다른 피시너 들의 결과물 중 최상위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다른 피시너들에게 코드를 시연하고 설명하는 동료평가도 모두 outstanding을 받고 통과 하였으나 마지막에 기계 채점에서 어이없는 형식 오류로 fail을 받고 0점 처리가 되어버렸다. 해당 형식은 과제문에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구글링을 통해 선배 피시너들의 코드와 대조를 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과제문만 보고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가 0점이었기에 실망이 컸으나 문제 해결 과정 자체가 즐거웠기에 결과인 fail이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3일간 9시간을 자며 몰두하고 친구와 토론한 과정의 충만함이 문제 풀기 시작한 시점의 목표였었고, 그 시간들을 모두 충만하게 사용하였기에 밤낮없던 3일간 행복했다.
동료 평가할땐 그 시간에 어떻게 동료들을 설득할지 난해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 구조의 당위성을 어떻게 어필해야 할지 등의 목표가 있었고, 스스로 생각하기 충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노력하였기에 행복했다.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닌적은 없었으나 그것이 주된 목표인 시간은 극히 짧았다. 과정에 몰두하며 그 시간동안 행복했고 과정들이 만족스러웠기에 결과야 조금 아쉬워도 모든게 끝나고 웃을 수 있었다.

본론

우리의 현재는 과거가 될 것이 확실하지만, 우리가 그리는 미래가 우리의 현재가 될 것인지는 불확실하기에 사람은 본인이 그리는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길 기원하는데에 현재를 소각한다. 사회 전반에서 현재의 이익을 포기했을 때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효익이 더 커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학습한 바가 있기에 이러한 행동들을 절제, 인내 등 미덕으로 추앙받고 권장되어 진다.
이와 반대로 지금 이 시간은 다시오지 않고, 미래는 불확실하기에 지금 추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YOLO(You All Live Once)의 관점도 있다.

가정

둘 다 조금씩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다음 5가지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 우리가 시간의 축을 타고 이동하는 ‘현재’에 묶여있고, ‘현재’라는 것이 시간의 축 위에서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해 일방적이고, 비가역적인 운동을 한다는 것,
  • 우리의 인식과 감정 또한 영원 불변하지 못하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
  • 대부분의 상황에서 현재의 자원을 당장의 만족을 위해 사용하는 것 보다 미래의 만족감을 위해 사용할때, 기대할 수 있는 $\frac{만족감}{자원}$ 의 크기가 더 크다.
    대부분의 상황이란 대부분의 상황이라는 전제조건은 회계에서 계속기업가정과 같다. 당장 또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 파멸적 상황에 놓이지 않을 것, 보유한 자원, 행동 결과들의 효용가치가 0이 되지 않을 것 이 확실시되는 상황을 말한다.
  • 모든 개인은 시간에 종속되어 있기에 현재가 미래의 방향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우리의 감정은 그 주체인 개인에 묶여있고, 필연적으로 휘발되고 왜곡되며 망각된다.
  • 자존감, 자기 효능감 등 내적 충만으로 부터 발생된 만족감은 반감 주기가 길거나 없고, 일시적인 발생이 아닌 자신에 대한 인식이 지속되는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은은하게 발생한다

결론

따라서 내가 보유한 지식과 그 외 다른 곁가지 지식과 경험을 조합하여 만들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 미래의 만족감 또한 결국 영원하지 못하며 결국 휘발되고 망각될 것이다.
  • 현재를 진심을 다해 목표를 겨냥하여 살아가고,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살며,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내적 충만감이 높아지며 여기서 오는 만족감은 단발성이 아니며 현재의 자원을 미래를 위해 사용하 며 얻을 수 있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만족감이다.

지금을 살아가며 매순간 자신에게 진실 하며, 진실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한다면, 현재를 미래를 위해 소각하는 삶을 살면서도 그것의 결과에 상대적으로 덜 연연하게 되고, 양질의 만족감을 지속적으로 얻으며 살아갈 수 있다.

단,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일 때

추가

2022.02.08
근래 사업가의 길이 아닌 학자의 길을 가려고 고민한 이유가 이러한 아이디어 때문이다.
며칠 전 생각을 소각하는 Clearance 의 과정에서 학자의 길을 접었다. 따라서 결론에 몇 가지 추가할 필요가 느껴져 사족을 달아본다.

결과와 무관하게 과정에서 충만함과 행복을 찾는다는 아이디어는 지식의 습득과 같이 성장이 목적인 행위에선 매우 적합하나 나의 만년에 이런 기조를 유지할 수 있진 않을 것이며, 또한 사업가의 길을 가는 경우 내 내적인 성장은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겠으나 사업에까지 이 것을 연장시키는데엔 무리가 있다. 과정의 충만함이 조직원들의 성장이 기업 역량을 키울 수는 있겠으나 기업의 목표로 잡기엔 매우 적절치 않은 아이디어 이다. 적당한 진실성, 과정의 충만함 추종,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칼같은 성과 우선주의, 결과 평가를 해야 한다. 기업수준에선 진실성이나 도덕은 마키아벨리즘이 말하는 완전 얄팍한 최소한의 표면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ESG 경향과 인구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고려해 조금 더 두터운 표면을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내 개인의 타락은 막아야 하며 내 도덕성을 필요에 따라 접고 기회주의적인 스텐스를 취해야 하면서도 내 비도덕적 행위에 내 본성이 동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task가 사업가의 길을 망설이는 가장 주된 이유 중 하나이다.
아마 내가 도덕적으로 타락한다면, 그 시발점은 나의 표리부동함을 유지하는데서 비롯한 피로와 그런 나에 대한 의심에 충만함의 좋은 기억들이 항복하고 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는 때일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건전한 도덕관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 타인의 입에서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는 것과는 별개로 내 스스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겨질 기억과 습관을 형성하는게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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