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저자, 출판사

칼의 노래, 이훈, 문학동네

작성 맥락

최근에 작성한 것이 아니고, 2019년 4월 경 군대에서 작성한 독후감이다.

대대 독후감 대회에서 포상휴가 3일을 받았던 독후감이나, 군내에서 누가 독후감을 열심히 썼겠나…
뛰어나서 받은게 아니라 아무도 내지 않아 받은 것이다.

그래도 당시엔 공을 좀 들였던 글이다.

수정을 하지 않고 올리려했으나 그래도 당시에 마음에 걸렸음에도 기한때문에 수정하지 못했던 2문장은 손보았다.

독후감

만약 조선에 이순신이 없었더라면 임진왜란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우리들 대부분은 생각할 것이다. 개인의 최선을 아득히 넘어선 공적을 올린 그를 우리는 영웅으로 기린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남긴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이훈 작가가 창작한 소설이다. 창작품이라는 생각에 <칼의 노래>의 무게가 일순 가볍게 느껴졌지만, 책의 서문을 읽으며 작가가 책상에 앉아 상상만으로 쓴 것이 아닌, 이순신의 생각을 읽기 위해 사적지를 둘러보고 이순신의 사당에서 하루 종일 이순신의 칼을 들여다보았다는 말에 다시 무거워 졌다.

책은 이순신이 임금에게 백의종군을 명 받고 순천에 도착한 시점에서 시작된다. 순천에서 배치를 기다리는 중에 원균이 이끄는 수군이 전멸하고 정유년 7월 임금은 교서를 써서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앉힌다. 멀리서 온 임금의 유시는 적들을 쳐부수라 명하고, 바로 앞의 적들은 수많은 배와 병사들 그리고 우수한 조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순신은 가진 것이 없다. 이순신은 그 상황에서 전멸해버린 수군을 정비하고 급하게 각지에서 목수들을 불러 배를 만든다. 그해 9월에 12척의 배로 330척의 적선을 맞아 33척을 침몰시키고 나머지는 후퇴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일본에서 파견한 무사들에 의해 아들 면을 잃는다. 부대 재건을 계속 하면서 적의 척후들과 자잘한 전투를 치루며, 철수하는 적을 쫒아 고금도로 진영을 옮긴다. 그리고 무술년 11월 노량에서 철수하는 적의 주력을 맞아 싸우다 이순신이 전사하며 책이 끝난다.

대부분의 역사소설이 그렇듯 <칼의 노래>의 큰 내용은 우리가 아는 역사 그대로이다. 그러나 영웅답지 않아 차라리 현실적인 이순신의 심리묘사와 이훈 작가 특유의 세심한 상황묘사가 역사소설의 ‘스포일러가 된 닫힌 결말’이라는 단점을 가리고도 남을 재미를 선사한다. 예를 들어 고금도에서 진영에 돌림병이 유행할 때 역병에 걸려 병사들이 죽어나가고 그 병사들을 땅에 묻었던 병사들이 며칠 뒤 차례로 역병에 걸려 묻히는 장면에 진중에 퍼진 막을 수 없는 죽음의 공포를 실감하게 해준다. 일본으로 철수하는 적의 주력을 치기 위해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의 함대가 떠있다. 함대의 중앙에서 이순신은 자신이 정유년 의금부에서 풀려나오며 시작됐던 긴 죽음의 유예 끝에 와있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전투의 막자비에 적탄에 맞고 개인과 세계의 대결에서 예정된 패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이순신의 모습에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우리가 이순신의 무과 시험 중 발목을 다쳤음에도 버드나무가지로 다리를 묶은 후 시험을 계속하는 모습과 학익진과 거북선으로 왜적들을 무찌르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영웅적인 면모만을 위인전을 통해 보아왔다면 이훈 작가의 <칼의 노래>는 거북선, 학익진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이순신이 지휘관으로서의 군 기강 확림을 위해 무자비하게 참수해 효시하는 모습부터 관노비와 동침하는 모습, 바로 앞에 들이 닥친 적곤과 멀리서 보채는 임금의 유시 사이에서 갈등하는 복잡한 심리까지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이순신이 등장한다. 이러한 작가의 묘사는 이순신을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적 영웅의 위치가 아닌 끔직하게 잔인한 전쟁속에 놓인 개인의 위치로 끌어내려 이순신이 영웅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병사들을 지휘하는 조선의 한 장수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게 해 그의 고뇌에 몰입하기 수월하게 만들어 준다.

그런 작가의 의도를 따라 들어간 이순신의 머릿속엔 배를 만들 목제도 없는 판에 조정에 종이가 없으니 마땅히 종이를 만들어 조정에 보내라는 유시를 보고 느낀 착잡함, 명에서 온 진린의 함대가 적과 내통해 결정적인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을 때의 분노 그리고 멀리서 보채는 거역할 수 없는 임금과 자신을 압도하는 적들 사이에서 결국 자신이 죽을 것임에 대한 확신 등의 생각들이 느껴졌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는 내 마음까지 착잡해졌다. 새삼 이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며 글을 쓴 이훈 작가가 대단해 보였다.

책을 다 읽고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책을 뒤적거리던 중 책의 도입부에 이순신이 정유년에 남긴 “必死則生 必生則死” 라는 이순신의 필적을 보았다. ‘정유년 이순신은 무슨 생각을 하며 저 글을 남겼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의 칼과 적들의 칼 사이에 물러설 곳이 없어진 이순신의 마음이 보였다. 이순신은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마음으로 수군을 정비하고, 가혹하게 군기를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치밀하게 짠 작전을 들고 12척의 배로 명랑 앞바다에서 적선 330척을 맞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순신은 영웅이 되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다섯 글자로 줄이면 “죽을 각오로”이다. 우리들이 시도하고 실패한 일 중에 죽을 각오로 했던 일이 있을까? 장담하는데 없을 것이다. 내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극기주의 외줄도하를 할 때와 천자봉 행군을 할 때조차 내가 ‘죽을 각오로’라는 생각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죽을 각오로’라는 마음가짐이 아직 영웅이 아닌 우리들에겐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해준다. 이순신은 ‘죽을 각오로’ 명랑에서 싸워서 영웅이 되었다. 우리가 아직 영웅이지 못한 이유는 죽을 각오로 우리가 가진 위대한 생각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죽을 각오로 뭔가를 한다면 그것을 이루지 못하겠는가를, 그리고 그 생각이 가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필사즉생 필생즉사를 보고 얻은 단상이 그동안 내가 했던 실패에 대한 수많은 핑계들이 허망한 말임을 알려주었다. 나는 아직 나의 최선에도 근접해본 적이 없다.

Comment

There are currently no comments on this article
Please be the first to add one below :)

Leave a Comment

내용에 대한 의견, 블로그 UI 개선, 잡담까지 모든 종류의 댓글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