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얼마 전에 나에게 과제가 주어졌다.
누군가 나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그토록 오래 고민했던 성철 스님이 남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그것을 마침내 풀게되었는데 다시 나에게 바통을 넘기며 이 말에 대한 답변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와의 전 대화에서 모종의 철학적 대화가 오고갔던 것으로 기억하나 당시 하도 머리가 복잡하여 나의 어떤 말에서 그가 실마리를 찾았다는지 밝혀내기 어려웠다. 성급한 마음에 당시 5분 정도 생각하고 우리가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 라는 라벨지의 무의미함에 대한 말이 아닌가? 라는 잠정적인 답변을 내리고 “2월 말에 시간이 날테니 그때 고민해보겠습니다.” 하고 넘어갔다.

도움

자명한 명제로 이루어진 간단한 문장에서 어떠한 맥락도 모르고 의미를 찾으라는 것인지 몰랐기에 질문을 받은 다음날 지하철에서 지루함도 달랠 겸 인터넷에 그 문장을 검색해 보았다. 네이버의 열린연단에 유종호 연세대 전 석좌교수가 쓴 에세이가 눈에 띄었다. 글 링크 유 교수님의 답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확한 답변은 원글을 볼 것을 추천한다.)

니체는 도덕적 현상은 없고 현상에 대한 도덕적 해석만 있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 사실은 없고 현상에 대한 해석만 있다는 뜻인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다소 난해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현상에 대한 해석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하나의 현상을 두고 그 해석을 달리하여 정치권이 치고 받고, 그럴듯 하게 왜곡하고 사족을 붙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이러한 입찬소리 를 경계하고, 현실에 대해 스스로 냉철하게 파악하는 노력을 요구하는 의미로 현 시대상과 결부시켜 해석할 수 있다.

나의 결론

유 교수님의 에세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나의 답변을 내어 보겠다.

산이라는 현상은 <산> 으로 표기하고 언어적 라벨인 산은 [산]으로 표기하겠다.
<산>은 산의 이미지를 떠올려주면 좋겠고, [산]은 문자 그 자체이다. 되도록 이미지는 떠올리지 말고 그냥 검은색 표식 그 자체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산>이라는 현상에 대해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여 고마운 [산], 멋진 [산], 훼손되어선 안될 [산]… 등 하나의 산을 두고 여러가지 파생 표현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문장들이 표현하는 대상은 모두 같으며 현상 이상의 의미는 주관적이기에 무의미하다. 다시말해 현상은 현상으로서 완전하며 라벨인 [산] 이상의 의미부여가 우리의 인지를 현혹시키는 것을 경계하라 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범위를 확장하여… [산] 이라는 라벨 조차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개인은 각자 미세하게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같은 현상을 전달하기 위해 [산]이라는 메신저를 보내었음에도 누구의 머릿속엔 야트막한 산이 그려질 수도, 누군가의 머릿속엔 에베레스트와 같은 높고 깎아지른 산이 그려질 수 있다. 언어조차 현상을 담기 부족하기에, 더더욱 어떤 것을 매개하지 않은 사실 자체에 집중해야 하나 우리가 현상을 지각하는 과정 조차 감각과 지식이 만들어낸 주관의 영역이다.

생각을 더 하다보니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인간은 사실을 온전히 지각할 수 없다. 라는 결론과 함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조차 무의미해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쫒는 사실이란건 관념적 허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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